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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보물의 시작과 행방 엘도라도와의 관계 찾는 시도들

by 빨간토끼1 2024. 10. 18.

1532년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가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잡힌 이후, 몸값으로 약속된 금과 은은 도중에 실종되거나 숨겨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엘도라도와 같은 신화와 연결되며, 수많은 탐험가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오늘날에도 페루와 남미 지역에서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잉카유적지
잉카유적지

보물의 시작

1532년,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사로잡혔습니다. 당시 아타우알파는 스페인군에게 자신의 몸값으로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금과 두 개의 방을 은으로 채우겠다는 이 제안은 실제로 실행되었고, 잉카 제국 각지에서 금과 은이 수집되었습니다. 하지만 피사로는 약속을 어기고 아타우알파를 처형했으며, 이로 인해 그가 약속한 보물의 상당 부분은 도착하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이 시기 동안 잉카 제국의 보물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 유물들이었습니다. 잉카 문명에서 금은 태양신 인티를 상징하며, 왕실과 신전에서 의식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보물들은 잉카의 정신적 유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단순한 금전적 가치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보물을 운반하던 잉카 병사들은 피사로의 배신 소식을 듣고 금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특히 루미냐우이라는 장군이 키토 근처의 호수에 금을 던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보물의 행방을 둘러싼 전설의 시작점이 됩니다.

스페인의 침략과 보물의 행방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제국의 엄청난 부를 탐냈고, 실제로 많은 양의 금과 은을 유럽으로 옮겼습니다. 당시 유럽으로 가져간 남미의 금과 은은 스페인의 경제적 부흥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에서는 식민지 시대에 약 41,000톤의 은이 생산되었으며,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은 생산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잉카 제국의 금과 은 중 상당수는 운반 도중 실종되거나 전투 중에 사라졌습니다 스페인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금과 은을 회수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보물은 깊은 안데스 산맥이나 정글 속에 숨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잉카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일부 지도자들은 스페인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물을 숨기거나 파괴했습니다. 이러한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잉카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계속 전해졌고, 이는 수백 년 동안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엘도라도 신화와 잉카의 잃어버린 보물

엘도라도 신화는 잉카의 사라진 보물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엘도라도는 스페인어로 "황금의 사람"을 의미하며, 한때 황금으로 뒤덮인 왕국이 존재한다는 전설이 유럽 전역에 퍼졌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와 아즈텍 문명을 정복한 이후에도 남아메리카 전역을 탐험하며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수많은 탐험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엘도라도는 결국 전설에 불과했으며, 아무도 그 위치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엘도라도에 대한 전설은 잉카 황제의 보물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제국의 황금을 약탈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양의 금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탐험가들에게 엘도라도와 같은 신비로운 장소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했습니다. 또한,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예술품들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잉카의 종교적, 문화적 신념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잉카 황제의 보물은 엘도라도 신화와 함께 남미의 탐험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잃어버린 보물을 찾는 시도들

현대에도 수많은 탐험가들과 고고학자들은 잃어버린 잉카 황제의 보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페루의 정글 지역과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지형은 보물 탐사를 위한 주요 장소로 여겨집니다. 페루 내의 고대 유적지에서는 잉카 문명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러한 유물들은 사라진 보물의 일부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루의 리마에 위치한 금 박물관(Museo Oro del Per)에서는 잉카 시대의 금으로 만든 다양한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잃어버린 보물의 일부가 살아남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보물은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이는 탐험가들과 역사가들에게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일부 전설에 따르면 루미냐우이 장군이 키토 근처의 라고 데 야나코차 호수에 금을 던져 숨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전설들은 실증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의문을 남기지만, 잉카의 보물 탐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고 있습니다. 페루 정부와 고고학자들은 역사적 자료와 현대 기술을 활용하여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결론

잉카 황제의 사라진 보물은 역사적 사건과 신화가 얽혀 있는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약탈과 잉카 제국의 몰락은 엄청난 부의 이동을 가져왔고, 이는 당시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보물들이 발견되지 않은 채 전설로 남아 있으며, 이는 잃어버린 보물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호기심과 탐험 정신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물 이야기는 잉카 문명의 문화적, 종교적 유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가치가 단순한 금전적 의미를 넘어섭니다. 오늘날에도 페루와 남미 지역에서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미스터리가 풀릴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